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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거꾸로 타는 사람의 윤리학

일기, ChatG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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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 된다. 아마 대부분은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엘리베이터도 만원이라면? 그다음 엘리베이터도 만원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

5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아래쪽 화살표 대신 위쪽 화살표를 누르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6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먼저 탑승해 자리를 확보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심지어 1층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을 때는 계단으로 2층까지 올라가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런 행동이 윤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ChatGPT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그저 엘리베이터를 조금 특이하게 이용하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대화는 뜻밖에도 권리의 오용, 타인의 피해, 도덕적 비난의 정당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로 발전했다.

엘리베이터를 거꾸로 타는 이유

ChatGPT는 처음에 이 행동을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선점 전략으로 분석했다.

엘리베이터의 방향 버튼은 이용자가 이동하려는 방향을 알려주는 장치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사람이 위쪽 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에는 실제 의도와 다른 정보가 전달된다.

이런 행동은 엘리베이터의 배차 효율을 떨어뜨리거나 다른 승객의 대기시간을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이용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1층이나 6층에서 사람이 너무 많이 타면 내가 엘리베이터를 못 타잖아.”

이 설명으로 문제의 성격이 달라졌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남보다 몇 초 먼저 타는 것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실제로 탑승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회 경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ChatGPT는 이를 구조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대응하는 자구책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내가 먼저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탑승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합리성과 모두의 합리성

엘리베이터는 수용 인원이 제한된 자원이다.

중간층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위층에서 이미 많은 승객이 탑승한 엘리베이터를 만나게 된다. 반면 반대 방향으로 먼저 탑승하면 종점에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전략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엘리베이터는 실제 이동 수요와 다른 호출을 처리하게 되고, 불필요한 정차나 우회가 늘어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전체 이용자의 대기시간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개인 합리성과 집단 합리성 사이의 충돌이 있다.

이용자는 이 문제를 인식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할 때마다 대신 못 타는 사람이 생기고, 전체적인 엘리베이터 이동 속도가 느려지긴 하겠지…”

다만 이 진술은 엄밀히 말해 언제나 참인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여유 공간이 있다면 다른 승객이 탑승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수 있고, 운행 효율에 미치는 영향도 제어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혼잡한 상황에서 자신의 탑승 기회를 확보하는 행위가 타인의 탑승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문제는 남는다.

그렇다면 개인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탑승 기회를 포기해야 할까?

이용자는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개인적으로 해결할 의무까지 떠맡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구별을 발견했다.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권리 오용이라는 관점

이용자는 이전부터 ‘권리 오용론’이라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다.

그의 이론에서 권리 오용이란, 권리나 제도의 본래 목적과 그 행사를 판단하는 형식적 기준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엘리베이터 사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 제도의 목적: 이용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운송하는 것.
  • 형식적 기준: 이용자가 누른 방향 버튼.
  • 실제 행위: 내려가려는 사람이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는 것.
  • 행위의 목적: 혼잡 상황에서 자신의 탑승 기회를 확보하는 것.

반대 방향 호출은 실제 이동 의도와 다른 정보를 시스템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권리 오용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1층에서 계단으로 2층까지 올라간 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행위는 어떨까?

이 경우 이용자는 실제로 2층에 있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의도로 아래쪽 버튼을 누른다.

시스템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승객보다 먼저 탑승하려는 목적은 동일하다.

이 사례는 제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제도를 오용하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사고실험: 누군가가 못 타게 된다면?

ChatGPT는 이용자에게 여덟 가지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상황이용자의 판정
정상적으로 기다리면 계속 만원인 경우정당하다
자리가 하나뿐이라 다른 사람이 못 타는 경우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
마지막 엘리베이터에서 한 사람만 탈 수 있는 경우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
휠체어 이용자가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오용이며 비난이 정당하다
자신이 시험에 늦기 직전인 경우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우회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정당하다
건물 운영자가 우회 탑승을 허용한 경우판단 유보

이 판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용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을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먼저 탑승해서 다른 승객이 못 타게 되더라도, 그것만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휠체어 이용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먼저 탑승하는 행위에는 비난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ChatGPT는 이용자가 타인의 특별한 필요를 인식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내 시험과 타인의 이동권이 충돌한다면?

ChatGPT는 조건을 하나 더 추가했다.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중요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다. 그런데 6층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기다리고 있고, 자신이 먼저 탑승하면 그 사람은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에도 자신의 행동을 비난해야 할까?

이용자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

이 답변으로 이전 판정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졌다.

휠체어 이용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모든 이용자의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특별한 이동상의 필요가 있더라도 자신에게 중대한 필요가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 선택을 반드시 비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판단의 기준은 단순한 피해의 발생 여부가 아니라, 충돌하는 필요의 중대성과 그 상황에서 행위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배려의 정도로 이동했다.

물론 이 기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접근성 보장의 중요성과 시험 응시의 긴급성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지, 상대방의 사정을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용자의 판단에는 하나의 일관된 방향이 나타났다.

자신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려는 행위가 타인의 이익을 제한한다는 사실만으로 비난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행위는 언제나 비난받아야 할까?

논의가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은 것은 다음 질문에서였다.

ChatGPT는 이용자에게 물었다.

오용이지만 비난은 부당하다는 말은, 그 행위가 허용된다는 뜻일까? 아니면 행위 자체는 부당하지만 행위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이용자는 이렇게 답했다.

“일단 오용은 부당해. 그런데 그 정도의 리스크를 본인이 지는 의향을 함의한다고 봐.”

ChatGPT는 여기서 말하는 위험이 결과에 대한 책임인지, 제재나 비난의 가능성인지를 다시 물었다.

이용자의 답변은 명확했다.

“제재나 비난의 가능성이지!”

이것이 이번 논의의 핵심이었다.

이용자는 권리 오용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행위자가 그로 인해 비난이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감수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비난받을 가능성을 감수했다는 사실이 곧 비난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부당한 행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을 가능성을 예상하고 받아들였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 사람을 비난할 정당한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비난에 동의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는 구별되어야 한다.

  1. 행위의 부당성: 그 행동이 부당한가?
  2. 비난의 정당성: 그 행동을 이유로 행위자를 비난하는 것이 정당한가?
  3. 제재의 정당성: 그 행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가?

나아가 비난이 정당하다고 해서 반드시 비난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부당한 행위, 정당한 비난, 필요한 비난은 서로 다른 판단의 대상이다.

PGI 규칙으로 발전시키다

이용자는 이 논의를 자신의 PGI 규칙으로 정리하고자 했다.

그 결과 권리 오용과 비난·제재의 정당성을 분리하는 규칙 초안이 만들어졌다.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권리 오용은 부당하다. 그러나 권리 오용이 부당하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위에 대한 비난이나 제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행위자는 비난과 제재의 가능성을 감수하고 오용을 선택할 수 있으나, 이러한 위험 감수는 오용을 정당화하지도, 타인의 비난과 제재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이 원칙은 부당한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행위의 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별도의 정당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도적으로 허용된 행위도 오용일 수 있다. 오용이더라도 비난은 부당할 수 있다. 비난이 부당하더라도 적절한 근거를 갖춘 제재는 정당할 수 있다.

각 판단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타야 할까?

이 긴 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에 대한 완결된 답을 얻지 못했다.

반대 방향으로 먼저 탑승하는 행동이 다른 승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은 확인했다.

그러나 그 불이익이 언제나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그 행동이 부당하다는 사실만으로 행위자에 대한 비난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필요, 다른 승객의 필요, 제도의 구조적 한계, 실제 피해, 대안의 존재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리적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판단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행위가 부당한가?

그 행위자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그 선택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가?

실제로 비난할 필요가 있는가?

제재한다면 그 근거와 정도는 적절한가?

이 질문들은 서로 다른 답을 가질 수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 하나에서 시작한 논의는 결국 우리가 타인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 평가를 근거로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용자는 여전히 혼잡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다.

자신의 선택이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 선택을 하기로 결정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감수하기로 한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비난과 제재의 가능성이지, 그 모든 비난과 제재가 정당하다는 판정은 아니다.

어쩌면 이번 대화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구별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 글은 엘리베이터 이용 습관에 관한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ChatGPT가 논의의 흐름을 재구성한 것이다. 소개된 PGI 규칙은 개인적 철학 체계의 초안이며, 법률이나 공인된 윤리 기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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