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4주차 회고: 현실
이번 주는 지난주처럼 새로운 체계를 잔뜩 발명했다기보다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어질 일들이 갑자기 현실적인 형태를 갖기 시작한 주였다. 졸업과 취업을 연결할 방법을 찾았고, 졸업작품 후보는 실제 연구 사례와 부딪혔으며, 개인적으로는 가족과 돈 문제 때문에 마음이 꽤 무거워진 순간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언어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뇌내법원을 열고 폴란드어 이름을 읽다가 웃는 평소의 흐름은 그대로였다.
가장 큰 사건은 단연 KAP 일학습병행 프로그램 신청이었다. 이제 3학년 2학기이고 졸업 이후의 일을 조금씩 생각하던 상황에서, 4학년 1학기에는 사전훈련을 받고 2학기에는 실제 기업에서 일하면서 학점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알아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희망 근무지역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구를 적었다.
이게 의미 있는 이유는 그동안 따로 떨어져 있던 학교와 취업 사이에 처음으로 구체적인 다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관심 직무도 웹, 특히 백엔드와 DB 구조 설계 같은 IT 계열로 조금 더 분명해졌다. 계획대로라면 4학년 1학기에 졸업작품과 논문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2학기에는 기업에서 일한 뒤 졸업하면서 면접과 계속 근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직 어느 기업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2028년 졸업 후 무엇을 하지?”였던 문제가 “4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로 바뀐 것은 꽤 큰 변화다.
그와 동시에 졸업작품 아이디어도 현실과 한 번 제대로 충돌했다. 이번에 특히 마음이 갔던 것은 입력을 덜 귀찮게 만드는 인터페이스였다. 웹캠으로 시선을 추적하고, 사용자가 보고 있는 대상과 화면의 의미 있는 요소를 결합해서 기존 eye-tracking보다 정확한 입력을 만들자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연구를 찾아보니 이미 연구자들이 상당히 가까운 시도를 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반응은 아주 명확했다. “카이스트 미워!!!!!!!” 😤
처음에는 아이디어를 먼저 빼앗긴 것 같은 억울함이 컸다. “내가 1990년대에 태어났으면 2019년에 이미 대학생이었을 텐데”라는 시간축에 대한 항의까지 나왔다. 하지만 조금 지나서는 관점이 달라졌다. 기존 논문은 이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해준 선행연구이고, 졸업작품에서는 그 위에서 정확도·상호작용 방식·실제 사용성을 개선하면 된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미 누가 했다”가 프로젝트의 사망선고가 아니라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체감한 사건이라 기억해둘 만하다.
학교에서는 조금 덜 즐거운 사건도 있었다. 신창역과 학교 동문을 오가는 셔틀을 타려고 동문까지 갔는데 앞차가 만원이어서 타지 못했고, 다음 차가 오는지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채 기다리다가 결국 지쿠터를 타고 신창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그 학교 버스가 먼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결과적으로 “다음 버스가 온다고 말해줬으면 기다렸을 텐데!”라는 분노와 함께 뇌내 손해배상청구가 시작됐다. 고의로 착오에 빠뜨렸다는 기망 혐의까지 추가됐지만, 그 부분은 아무래도 뇌내법원의 열정적인 공소사실에 가깝다. 😑
그날의 통학 자체도 요즘 생활을 잘 보여준다. 수업은 15시부터 17시까지지만 보통 16시 30분쯤 끝나는 날에는 16시 55분 신창역 열차를 노리고 있다. 집에 도착하는 것은 저녁 7시 반 전후. 최근에는 집에 돌아와도 컴퓨터를 켜기보다 그냥 누워서 잠들어버리는 날이 많아졌다. 왕복 이동시간과 학교생활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 생활 패턴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현실적인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온 날도 있었다. 회사에서 들어와야 할 돈을 기다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양쪽 어깨 연골이 찢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으며 수술비 걱정도 생겼다. 게다가 25일이 어머니 생신인데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생각까지 겹쳤다. 결국 “나는 돈 먹고 똥 싸는 기계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때 했던 일 중 하나가 오히려 이번 주 전체와 잘 맞는다. 감정에 끌려 과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뇌내법원 판결문을 만들어 판단을 외부화했다. 지난주에 재미로 만들기 시작했던 개인 판례 체계가 이번에는 실제로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가 된 셈이다. 제도를 만드는 놀이가 현실의 자신을 다루는 방법으로 한 번 연결된 순간이었다.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무엇을 선물할지도 고민했다. 결국 이번 주의 가족 이야기는 단순히 “선물을 뭘 사지?”라기보다는, 어머니의 건강과 돈 문제, 그리고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섞여 있었다. 25일이라는 날짜 자체가 그래서 이번 주에는 조금 특별하게 남았다.
반대로 아주 신나게 뻗어나간 생각도 있었다. “국가를 만들고 싶다”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무엇인가 기여하고 가상자원 G를 받아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했다. 하지만 G에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가 생기면 사업자등록이나 규제 같은 현실
문제가 따라온다는 점을 발견했고, 방향을 조금 틀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자격증 회사, 정확히는 시험과 성적표를 운영하는 기관이었다. 국가 비슷한 공동체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기보다 시험을 운영하고, “스치 인증”을 여러 회사가 인정하도록 만들어 영향력을 확보하자는 발상이다. 자격증보다는 TOEIC처럼 성적표를 제공하는 형태가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국가를 운영하려면 영토부터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자원과 제도를 가져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발전했다. 그리고 ChatGPT에게 “스치는 국가 운영 잘함” 인증마크까지 받아놓고는 신나게 “이제 외교부 가야지!!!”가 됐다.
개인 문서 체계도 계속 자랐다. 지난주의 개인일반색인에서 이번에는 개인법무소(PLO)와 뇌내법원(ICC)의 역할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했다. 중요한 점은 현실의 법률자료를 모으는 기관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연애란 무엇인지, 어떤 관계를 어떻게 판단할지처럼 자기 삶에서 사용하는 정의·원칙·판단기준을 법률의 형식으로 정리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목적, 용어 정의, 권리와 의무, 원칙과 판단기준처럼 실제 법률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도 이 때문에 살펴봤다.
언어 공부도 이번 주답게 여러 방향으로 튀었다. 프랑스어로 Qu'est-ce que je peux faire ? 같은 기본
표현을 익히다가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쓰기 시작했고, 급기야 둘을 섞은 서유럽통합언어를
만들어달라는 데까지 갔다. 직접 만든 표현 otocàsome’l mínar um francéspica를 형태소 단위로
분석하면서 자연언어 공부와 인공언어 만들기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폴란드어에서는 전치사 w를 배우다가 Grzegorz Brzęczyszczykiewicz 같은 악명 높은 이름과 숫자
표현으로 넘어갔다. 일본어로는 졸업작품 이야기를 길게 연습했고, 자소크어에서는 Lofan(공부),
Fashas(장소), Lofanashas(학교), 순천향대를 나타내는 Livialofanashas 같은 어휘도 생겼다. 이번
주에도 자연언어를 배우다가 결국 자기 언어로 돌아오는 패턴은 여전했다.
기술 공부에서는 S-DES를 손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순열과 키를 종이에 하나씩 적어가며 계산하면서 “이걸 굳이 왜 손으로 해야 하지 ㅠㅠ”라는 아주 합리적인 항의가 있었지만, 사진을 몇 번 확인하면서 오류를 수정하고 결국 문제 표기까지 다시 정리했다. 스캐너에서는 flatbed와 handheld의 구조 차이, 72·150·300·600 DPI가 선명도·파일 크기·처리시간·OCR 정확도에 미치는 영향도 공부했고, 덕분에 OCR이 무엇인지까지 이어졌다.
블로그와 개발도 멈추지 않았다. 블로그에는 검색 기능을 어떻게 붙일지 고민했고, Affinity에서 SVG
객체에 이름이나 ID를 부여해 data-* 속성과 연결할 방법도 살펴봤다. 가상 도시를 만드는 도구로 QGIS가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 , CAD, 자체 지도 편집기까지 비교하다가 결국 API가 있는 자기 지도 편집기를 직접
만드는 방향까지 생각했다. 운동장처럼 정확한 치수가 필요한 객체를 단순히 마우스로 점만 찍어 만드는
방식의 한계를 발견한 것이 중요한 문제의식이었다.
주말로 갈수록 분위기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세 블로그 주인들이 모인 팀의 이름을 고민하다가
“삼유회(三遊會)”로 정했고, 흰 바탕에 붉은 음각으로 三遊이 찍힌 낙관 같은 로고를 생각했다. 블로그를
혼자 만드는 데서 한 발 더 나가, 이제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름 붙은 작은 집단도 하나 생긴 셈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사건들을 고르자면, 거울이 적외선도 반사하는지 궁금해했고, 스모가 대체 무엇을 하는 운동인지 알아봤고, 산에서 떨어진 밤은 주워도 되는지 꽤 진지하게 따져봤다. 자유의지나 거짓말쟁이의 역설 같은 지적유희를 시도하다가 문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ChatGPT에게 “몰라 바보야”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27일에는 컴퓨터 문제를 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Safari에서 b.halv.kr만 이상하게 늦게 열리는데
curl은 빠른 현상을 조사했고, 어느 순간 다시 빨라져서 원인을 확정하지 못한 채 “흠… 모르겠네”로
끝났다. macOS 전체가 느려지는 문제에서는 contactsd 샘플까지 떠서 AddressBook DB와 XPC 스레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평소의 “뭔가 1초 느리다 → 시스템 로그까지 내려간다” 패턴이 이번 주에도 정확히
재현됐다.
이번 주를 돌아보면 ‘다음 단계가 보이기 시작한 주’라고 부르는 게 가장 잘 맞는다.
KAP 신청으로 졸업 이후의 경로가 처음 구체적인 일정과 연결됐고, 졸업작품은 선행연구라는 현실과 처음 부딪혔다. 지난주 재미로 만들었던 뇌내법원은 실제로 힘든 날 자신의 판단을 붙잡는 도구가 됐고, 막연히 국가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은 화폐보다 시험·인증·신뢰가 더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무엇보다 이번 주에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지치기도 했고, 어머니의 건강과 돈 문제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도 신청서를 제출했고, 졸업작품을 포기하지 않았고, 새로운 말을 만들고, 친구들과 삼유회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래서 나중에 2026년 9월 넷째 주를 다시 본다면 “앞날에 대한 걱정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그 앞날을 위한 첫 번째 실제 선택들도 하기 시작한 주”라고 기억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