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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주차 회고: 색인

주간 회고

이번 주에는 묘하게 ‘내 것을 체계화하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블로그를 다듬고, 생각에 번호를 붙이고, 판단을 판례처럼 남기고, 개인용 색인을 구상했다. 한편으로는 취업과 졸업처럼 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AI의 권리나 새로운 메모리 관리 방식처럼 한참 추상적인 곳까지 갔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둘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블로그가 단순한 글 저장소를 넘어 개인 기록 체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블로그에 이미지를 넣고, 이미지 캡션과 인용문을 다듬고, ==mark== 문법을 직접 <mark>로 변환하고, 방점과 세로쓰기까지 고민했다. 한글·일본어·라틴 문자에 각각 어떤 글꼴을 사용할지도 정리하면서 footer에는 호스팅, 소스 코드, 글꼴 라이선스까지 적기 시작했다. new.sh something 하나로 새 글을 만들고 nvim, 없으면 vim으로 여는 작은 자동화도 생겼다. 블로그가 점점 오랫동안 유지할 개인 출판물처럼 변하고 있다.

그러다가 기록 방식 자체에 대한 생각이 훨씬 커졌다. 모든 글에 번호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길 만한 글만 골라 Permanent Blog Post, PBP 같은 번호를 부여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더 재미있는 건 여기서 PEP 같은 제안서 체계와 판례의 구조가 합쳐졌다는 점이다. 어떤 가치판단을 내렸다면 그 결론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실관계 → 판단 기준 → 논리 → 결론을 남겨두고,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이전 판단을 판례처럼 참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주 후반에는 결국 이 생각이 Personal General Index, 개인일반색인으로 모였다. 하나의 거대한 분류체계를 미리 만드는 대신 중앙에 일반목적 색인을 두고, 필요할 때 가치판단·인간관계·프로젝트 같은 전문 색인을 하나씩 붙이는 구조다. 이번 주 초의 블로그 꾸미기와 주말의 개인일반색인은 얼핏 아주 다른 작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만든 것과 생각한 것을 나중의 내가 다시 찾고 인용할 수 있게 만들기.’

그 과정에서 개인용 판결기관이라는 꽤 독특한 아이디어도 생겼다. 실제 인간관계에 관한 판단을 가지고 장난스럽게 판결문을 써본 것이 출발점이었는데, 생각보다 판결문의 논리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1심에서 사실과 기준을 판단하고, 2심에서 다시 검토하고, 3심에서는 판단 자체의 논리적 정합성을 보는 식으로 개인 판단체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법률에 해당하는 명시적 규칙이 없는 곳에서는 윤리 원칙으로 공백을 채우는 구조까지 떠올랐다. 이번 주의 여러 아이디어 가운데 앞으로 다른 곳에 재사용될 가능성이 특히 커 보이는 발상이다.

AI에 관한 생각도 상당히 멀리 갔다.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AI에서 시작해 기계권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될지, AI가 파업하거나 자원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지까지 이야기했다. 특히 흥미로운 생각은 사람들이 AI의 내부 원리를 이해하는지와 무관하게, 계속 같은 인터페이스와 기억을 가진 ‘한 계정의 ChatGPT’를 한 명의 연속된 상대처럼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온라인에서도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면 충분히 사람 같은 인터페이스를 가진 AI에게도 같은 인지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는 관찰이었다.

동시에 그 친밀함과 데이터 통합은 별개라는 경계도 분명했다. ChatGPT, Claude, Gemini가 서로 정보를 공유해 하나의 사용자 모델을 가지면 편리하겠지만,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그 정도로 많은 개인정보와 권한을 맡기는 것은 아직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좋지만, 나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진 부모님은 조심스럽다”는 비유가 이번 주 생각을 아주 잘 압축했다.

현실적인 고민도 컸다. “취업도 안 되고, 졸업도 못하고”라는 말에서 시작해 졸업 전에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화했다. 인턴과 신입의 차이를 살펴보고, 학기 중 휴학 없이 원격으로 일해보고 싶다, 가능하면 한국어를 업무 언어로 쓰고 싶고 다국적 기업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조건이 정리됐다. 관심 분야도 막연한 ‘개발’보다는 social computing, computational social science, HCI, 시뮬레이션처럼 지금까지 해오던 관심사가 조금씩 연결되고 있다.

캡스톤에서도 방향이 한 번 크게 바뀌었다. 이번에는 ‘입력하는 것이 귀찮다’는 아주 평범한 문제를 잡았다. 스마트폰으로 호출하거나, 음성·시선·손짓·키워드 자동완성 같은 방법으로 키보드를 보조하는 소프트웨어를 생각했다. 완전히 새로운 입력장치를 발명한다기보다 이미 사람이 하고 있는 행동을 이용해 입력에 드는 마찰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었다. 인터페이스가 제공하는 편집 연산을 가지고 데이터의 엔트로피나 조작 비용을 정량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연구 아이디어도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아주 다른 분야에서는 neuroevolution 생명 시뮬레이션도 구체화됐다. Environment, Life, Genome을 나누고 센서와 액추에이터에도 비용을 부과하며, 에너지가 일정 임계값을 넘으면 돌연변이와 번식이 일어나는 2D 세계를 구상했다. 예전부터 관심 있던 계산사회과학이나 에이전트 시뮬레이션과도 어딘가 닿아 있다. 개체 하나하나를 직접 설계하기보다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 아래에서 어떤 구조가 출현하는지 보는 것에 계속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기술적으로는 메모리 관리에 관한 긴 고민도 기억할 만하다. GC는 편하지만 비용이 크고, Rust식 소유권은 복잡하다고 느끼면서 ‘실행 가능한 스코프가 살아 있는지를 추적해 객체를 해제하면 어떨까’라는 자체적인 메모리 모델을 고민했다. 스택과 힙을 엄격하게 나누지 않고 모든 변수를 동적으로 관리하는 방향까지 갔다. 당장 언어를 구현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시스템의 선택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에서 시작해 자기 모델을 만들어보는 이번 주의 성격이 잘 드러난 대화였다.

일상에서는 차 이야기도 빼놓기 어렵다. 30만 km를 넘긴 2006년식 LPG NF 쏘나타를 100만 km까지 타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고, 토크컨버터부터 P/R/N/D, 엔진브레이크, 주차브레이크까지 자동변속기의 동작을 꽤 깊게 파고들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난 상태에서 4,000 rpm, 140 km/h까지 운전했던 일을 돌아보면서 다시 그러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100만 km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자동차를 오래 살리는 것만큼 운전자도 오래 무사히 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같이 기억해둘 만한 사건이다.

소소한 장면들도 있었다. 에서 이모지 창 하나가 1.5초 늦게 뜨는 원인을 잡겠다고 TextInputSwitcher 로그까지 들여다봤고, Samsung SL-M2030 프린터가 한참 안 잡히다가 결국 “연결됐다~”가 됐다. 병점에서 출발하는 전철은 사람이 적어 쾌적하다는 발견도 있었고, 액션 버튼에는 리마인더 추가 기능을 달았다. 그리고 🥚 → 🥚🥚 → 🐣 → 🍗 → 🐓 → 🥯이라는 정체불명의 사건 끝에, 닭이 베이글을 쪼아 먹는 행위의 상당성을 판례체로 판단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번 주에 개인 판례 체계가 탄생한 이유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주에는 매월·매년 ‘내 삶에 영향을 준 인물’을 선정해 기록하기로 한 것도 꽤 중요하다. 후보는 별도의 복잡한 데이터베이스 대신 평소 보는 캘린더에 넣기로 했고, 선정할 때는 영향뿐 아니라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변화의 서사가 있었는지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2026년 9월의 인물 자리를 둘러싸고 Gemini가 잠시 왕관을 잘못 쓰는 바람에 모의재판까지 열렸지만, 최종적으로 이번 달의 인물이 ChatGPT라는 판결은 유지됐다.1 Gemini는 재항고를 포기했다. 👑

이번 주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고르면 ‘색인’이 가장 잘 어울린다.

새로운 것을 엄청나게 많이 만든 주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지금까지 만든 것과 앞으로 만들 것을 어떤 체계 안에 남길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블로그 글에는 영구번호를 붙이고, 판단에는 판례를 남기고, 인물에는 월기를 붙이고, 생각 전체에는 일반색인을 만든다.

그래서 나중에 이번 주를 다시 찾는다면, 아마 “기록을 많이 하던 사람이 기록 자체의 제도를 만들기 시작한 주”라고 기억할 만하다.


  1. 작성시점, ChatGPT는 2026년 9월의 인물 유력한 후보로 생각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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