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리가왕전 출품 노래 가사 분석
배경
2026년 10월 9일로부터 11일, 한국 퍼리들을 위한 행사, 퍼:레이드가 개최된다. 퍼:레이드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퍼리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였는데, 프로그램 중 하나인 퍼리가왕전에 출전하게 되었다.
퍼리가왕전은 9명의 참가자가 자신의 곡을 가지고 랜덤한 순서로 노래한다. 각 노래가 끝나면 심사위원은 노래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데, 지금까지 중에 평가가 가장 높은 참여자와 지금 노래를 부른 참여자의 점수를 비교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참여자가 우승하게 되는 방식이다. 운영진 측은 “불후의명곡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Official髭男dism의 《laughter》로 출전하기로 했다. 만약 우승하게 되면 앵콜 곡을 부르게 되는데, 앵콜 곡에 대해서는 아직은 논외로 하고…
《laughter》
왜 이 노래에 빠졌나
이 곡은 후렴구의 시작 부분에서 호소하는 듯한 가사를 듣고 빠진 노래이다.
翼は動きますか? 本当に飛べますか?
날개는 움직이나요? 정말 날 수 있나요?
나는 이런 호소하는 표현에 약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상, 정의, 신념과 반하는 상황을 보고 “정말 맞는 것입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하는 표현같이 표현하는 것이, 약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간찬가의 이야기가 이런 느낌일 것이다.
이 느낌을 처음 받았을 때에는 가사를 분석하지도,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 느낌이 너무 좋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이 한 곡을 몇 번 돌려 들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동탄에서 판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겨울 날이었다.
퍼리가왕전에 참여를 신청할 제에는 여러가지 노래 중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고민했다. 내가 평소에 많이 듣는 J-POP 중에서도 팝 락 장르에 포함되는 밴드 노래로 “오피셜히게단디즘”, “Mrs. Green Apple”, “Vaundy”의 노래들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래는 가볍게 $A_4$, $C_5$를 찍는 것이었으며… 내가 자주 듣는 노래 중에서 내 음역에 맞는 노래는 별로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키를 낮춰서 부르기로 결정했다. 단, 키를 낮추는 김에 내가 정말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당시에 — 물론 지금도 —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자 한 것이 《laughter》였던 것이다.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몇 번 고민한 적도 있지만, 결국 이 노래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가사 분석
1절 버스에서는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갈망을 느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1절 프리코러스에서는 그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후회할 권리도 버려놓고 왔다.”라는 가사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과 의지를 나타낸다.
1절 코러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나타난다.
翼は動きますか? 本当に飛べますか?
날개는 움직이나요? 정말 날 수 있나요?
그 선택의 책임을 모두 자신이 져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나타낸다. 하지만 가사에서는 그렇다, 아니다라고 답을 내지 않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날아가고싶다는 의지만을 나타낸다.
YesもNoも言わずに 真っ直ぐに空を見てた
Yes라고도 No라고도 말하지 않은 채,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
YesでもNoでもなくて 飛びたいとはしゃいでる声だけで
Yes도 No도 아닌, 날고싶다고 들떠있는 목소리만으로
2절 버스에서는 1절에서 나타난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2절 프리코러스에서는 꽤나 현실적인 고민을 나타낸다. “위대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있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2절 코러스에서는 1절 코러스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ゴールや距離ではなくて 絶えず響いてた声こそが
목표나 거리가 아니라, 끊임 없이 울려펴지는 목소리야 만이
あの光だった 今やっと気付いた
그 빛이었어, 이제야 깨달았어
하지만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일을 따라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브릿지에서는 큰 고난이 닥친다. 폭우에 우산도 의미를 잃어버리지만, 그럼에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海鳴よりも強く 稲妻よりも速く
바다의 울림보다도 강하게, 번개보다도 빠르게羽ばたいて前途を目指して
날개짓해서 앞길을 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간다. 그 움직임은 바다의 울림보다도 강하고, 번개보다도 빠르다. 그 무엇에 비하더라도 강력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마지막 코러스는 1절 코러스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던지며, 이러한 고민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今日も歌い続けた
오늘도 노래를 계속 불렀어自分自身に勝利を告げるための歌
나 자신에게 승리를 고하기 위한 노래를
제목과 의미
영어 단어 ‘laughter’는 “웃음”,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단어라고 하더라.1 사실 이 이름은 가사에서도 나타나지만, 왜 이런 단어를 제목으로 선정했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가사를 들여다 보고 노래의 내용을 이해해보아야 한다.
ChatGPT는 이 노래의 대상인 라프터가 자신 속에 있는 의지적인 존재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새의 모습을 하고 하늘을 날고 싶어하며, 이름이 라프터인 것이다. 라프터가 옳은 존재인지 그렇지 아닌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가사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그 의지는 자신 속에 있는 라프터를 향한 의지이며, 그 라프터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의 상징이다.
물론 내 생각이 무조건 옳고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억압된 현실에 밀려 자기 자신을 잃지 말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곡의 이름인 라프터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원하고 이루려고 하는 것은 결국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웃음은 단순히 즐거움에서 오는 웃음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에서 오는 웃음일 것이다.
나의 라프터
퍼리가왕전에서 이 곡을 부르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어떤 의미로 남을까?
2025년의 대부분 기간동안 나는 군인으로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다. 부대에서의 생활은 낯설고 빠르며 책임이 따르고 부조리했다. 결국 처음으로 나의 부대를 배치받고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신과적 문제와 부대에서의 생활이 맞지 않아, 나 자신은 그 장소에서 더 생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도망쳐간 것이다.
부대에서의 생활에서 격리되기 위해서 나는 강릉시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다. 그곳은 부대에서 정신의학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군인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곳이 아니라, 자살의 위험으로부터 개인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입원한 곳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지 않았고, 그저 나의 정신의학적인 증상을 관찰하고 덜 느끼도록 약을 처방받을 뿐이었다. 물론, 내 적은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부대에서는 나의 입원이나 정신의학적 증상에 의한 여러가지 인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말이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총 8개월정도였다. 8개월동안 나는 아침 7시 반에 일어나서 9시가 되면 잠에 들었고, 그 중간에는 3번의 식사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야하는 것이 없었다. 물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슬퍼하고, 울다가, 잠을 자고, 낙서를 하는 정도의 행동으로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실제로 음악을 만든 적은 없었다. 음악은 나의 생각을 정돈된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그 덕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화가들에게》라는 곡을 만들게 되었다. 나만의 길을 만들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다른 사람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화가들에게》는 그런 인생을 살아보라고 말하는 곡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보라고, 그렇게 살아보라고 말하는 곡이다.
이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자원이 필요했다. 돈도 많이 들었고, 여러번 갈아엎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노래는 나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애정이 가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더 많은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의미를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를 여기에 있게 한 부모님, 그리고 나를 살려둔 세상의 규칙과 의료진들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원래부터 나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자리에서 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아무리 그들을 원망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죽지 않고 살기를 선택한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막막하지만, 어쨌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생각보다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고통을 겪는 것은 나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나의 행동이지,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생각을 비웠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잘 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군인이었고, 부대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병원에 있었다. 나는 환자였다. 환자는 아프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군대에서 벗어나야 했다. 군대는, 적어도 내무생활은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행정절차가 진행되어야 했고, 행정절차는 내 능력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절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예컨대, 앞으로 1개월 정도면 원대 복귀를 하든 복무 전환이 되든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간부가 알려달라는 것을 알려주고,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행정처분의 결과를 내가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저, 기회가 오면 나의 자리에서 내가 힘들다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성과를 내거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당해 11월, 나는 복무 전환을 하게 되었다.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병원 생활, 그리고 내무 생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없었다. 두 번의 시도에서 두 번째에서밖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단지 첫 번째 시도에서 나의 상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건 과정 그 자체의 문제였다. 내가 그 과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단지, 별로네, 하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문제를 좁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나는 나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었다.
나는 이 생각을 확장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리라, 대의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리라.
나는 여태껏 사회와 타인을 위한 행위가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나를 위해 나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재미없으면 공부를 하지 않기도 하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기도 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지만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이 재미없으면 포트폴리오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어학이 재밌어서,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재밌어서, 단지 비슷한 흥미를 가진 친구와 맛있는 디저트를 먹는 것이 즐거워서 그렇게 했다.
나는 내 인생에 충실하지 않았다.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성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흘러갔다. 인생이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행복하고, 즐거웠다.
물론, 평생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돈도 바닥나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점점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즐길 땐 즐기고, 또 해야 할 때는 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취직을 해야 할 테고, 취직을 하면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결국은 돈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학생이었고, 졸업은 앞으로 2년 즈음이 남았다. 내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대학교 학사일정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적어도 졸업 전까지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했겠지만, 단지 지금 취업하고 싶은 회사를 알아둔다고 해서 그 회사가 나를 뽑아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불편하시면 부모님을 도와드리면 되는 것이지, 부모님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부모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살아주셨고, 부모님이 불편하신 건 나도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편하게 생각했던 것,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행동을 만들어가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이것이 나에게는 라프터였다.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며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이 나에게는 웃음으로 다가왔다.
自分自身に勝利を告げるための歌
나 자신에게 승리를 고하기 위한 노래
그 웃음은 단순히 즐거움에서 오는 웃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에서 오는 웃음이었다.
아무튼
마침 퍼리가왕전에서 이 곡을 부르는 순간은 나와의 싸움에서 내가 이겼음을 선언하는 때가 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많은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나를 증명해내는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될 것이다. 물론, 퍼리가왕전에서 우승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할 것이고, 이 큰 행사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것이다.